도자기 이야기 270

백자청화진사채 매화문 사각연적 白磁靑華辰砂彩梅花文四角硯滴

백자청화진사채 매화문 사각연적 白磁靑華辰砂彩梅花文四角硯滴 9.3x10.3x7(h)cm : 2006년 12월 12일 서울옥션 제104회 미술품경매 No.125 유찰 일본의 한국도자연구가로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까지 받은 이토 이쿠타로(伊藤郁太郞) 전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관장은 조선백자 가운데 문방구 비중이 크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밝힌 바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연적은 어느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도 많고 종류도 많다고 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조선 도자의 매력을 얘기할 때 연적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까지 말했다. 청화와 진사로 색을 내고 매화나무가지와 매화꽃을 주문양으로 한 이 연적도 조선도자기의 매력을 얘기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이 연적은 19세기중반 분원절정기에 만들어졌다. 문양부..

도자기 이야기 2019.07.12

백자청화 가형 연적 白磁靑華家形硯滴

白磁靑華家形硯滴 7.7x7.5x8.2(h)cm : 2014년12월17일 서울옥션 제134회미술품경매 No.269, 4000만원 낙찰 조선후기 들어 문인들의 자그마한 호사(豪奢) 취향에서 시작된 연적은 이토 이쿠타로(伊藤郁太郞) 前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관장이 지적한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기법은 제쳐두고 형태로만 보더라도 사각, 팔각, 원형, 부채꼴과 같은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가 있다. 그 외에 분청사기의 자라병 모습을 한 것에서 꽃잎형, 가락지형, 무릎형, 복숭아형 등이 있다. 또 동물 모습을 본 뜬 것으로 거북, 해태, 용, 나비, 물고기, 참새, 닭, 개구리 등의 연적도 있다. 동물은 아니지만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금강산 모습을 한 연적도 만들어졌다. 연적에 보이는 이런 버라이어티..

도자기 이야기 2019.07.11

金継ぎ 긴쓰기 ( Kintsugi)

金継ぎ 긴쓰기 ( Kintsugi) 일본 문화에서는 깨진 물건이 온전한 새 물건보다 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보수 과정을 통해 그것이 더 흥미로운 물건으로 거듭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건을 고쳐 더 좋게 만드는 행위를 가리키는 긴쓰기(金継ぎ, 〈금으로 이음〉이라는 뜻)라는 단어도 존재한다. 긴쯔기는 일본의 와비사비의 불완전함, 완벽하지 못함을 허용하는 것으로 깨진 부분을 감추기 보다, 오히려 더 보이게 만들어 그릇과 함께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중요한 물건에 깨져서 고친 부위가 있을 때 그것을 감추거나 최소화해서 새 것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일본의 긴쯔기 에술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부셔진 부분을 가려서 안보이게 하기 보다는 긴쯔기는 깨진곳을 고치면서 그곳..

도자기 이야기 2019.07.10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히트 상품, 란가쿠데의 탄생

도자기로 보는 세계사 ⑨ ] 미카와치 출토 찻사발은 진해 웅천의 ‘웅천형 사발’과 비슷 - 시사저널 - 2019.07.06 :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지난번에 언급했던 종차관(從次貫)과 그 후손인 후쿠모토(福本) 가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종차관은 아마 정(鄭)씨 아니면 정(丁)씨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일본어로는 이를 표기할 수 없어 종(從)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쓰우라 시게노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대로 사기장 가운데 가장 기량이 좋았던 종차관을 히젠나고야성(임진왜란 침공 목적으로 병력을 집결시킨 가라쓰 근처에 새롭게 세운 성)에 머물고 있던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히데요시는 종차관에게 그곳에서 가마를 차리게 하여 다기를 만들게 했다. 종차관은 찻사발뿐만 아니라 히데요시가 좋아..

도자기 이야기 2019.07.08

나가사키 도자기 수출의 초석을 쌓은 ‘고려할머니’

도자기 세계사 ⑧] 후손들 400년 동안 도예 기술 이어와 납품 어용가마로 지정되기도 - 시사저널 - 2019.06.16 :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7편에서 거론했던 거관(巨)과 함께 웅천에서 끌려온 사람 가운데는 ‘에이(嫛)’, 즉 나중에 고려할머니(高麗)라 칭송되는 계집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미쓰우라 사료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카와치 도자기 약기(三川內燒物略記)》는 에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조선에서 빨래하러 나온 어린 여성을 데려와서 영주가 외로운 그녀에게 모든 편의를 보아주며 손으로 빚는 도예 기술을 배우게 하였는데,1610년경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 그는 이름도 나이도 밝히지 않았고 혼인할 뜻도 없었다. 거관(巨関)이 혼인하여 1610년 아들을 낳자 어미처럼 거관의 ..

도자기 이야기 2019.07.08

미카와치 가마 도자기에 흐르는 조선의 혼

도자기 세계사 ⑦] 히라도 번주의 대대손손 부(富)를 만들어준 조선 사기장 ‘거관(巨関)’ - 시사저널 - 2019.06.01 :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지난 글에서 히라도(平戶) 초대 번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침공의 향도(嚮導·안내자)를 맡았던 마쓰우라 시게노부(松浦鎮信·1549~1614)가 끌고 온 조선 사기장 중에 진해(지금은 창원시) 웅천(熊川) 출신의 거관(巨関)과 종차관(從次貫), 에이(嫛), 순천 출신 김영구(金永久)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과 이들의 후손은 도자기를 만들어 당시 히라도번의 산업진흥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나가사키 항구를 통한 대유럽 수출에 엄청난 기여를 함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패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

도자기 이야기 2019.07.08

일본 새 연호 ‘레이와’와 조선 도자기의 질긴 인연

도자기 세계사 ⑥] 일본의 3대 찻사발 모두 조선인 사기장 후손들에 의해 시작돼- 시사저널- 2019.05.19 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일본이 5월1일부터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 새 연호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아베 총리가 강조하고 있는 그대로 레이와가 ‘아름다운 질서’를 뜻하나보다 하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연호가 감추고 있는 속살을 밝힌 글을 찾아보기 힘든 사실을 보면 학자들 역시 ‘레이와’의 진짜 의미를 밝히는데 매우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러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일본인은 아주 옛적부터 자신들의 나라를 ‘와(和)’로 지칭했다.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야마토(大和) 지방, ..

도자기 이야기 2019.07.08

‘경매 최고가 석권’ 백자 달항아리 인기 비결은?

‘경매 최고가 석권’ 백자 달항아리 인기 비결은? - KBS - 2019.07.08 얼마 전 국내의 한 미술품 경매에서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조선 도자기 사상 경매 최고가에 낙찰됐습니다. 세간의 주목을 그다지 끌지 못한 가운데 소리 소문도 없이 심리적 지지선이라 여겨졌던 30억 원을 보기 좋게 넘어섰더군요. 사진에서 보시듯 아무런 무늬도 없이 흰 빛깔에 그저 크고 둥글게 생긴 항아리일 뿐인데, 그동안 경매에 나온 조선 도자기 중에서 가장 비싼 몸값이 매겨진 이유가 대체 뭘까요?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석권한 조선 백자 달항아리 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역대 경매를 기준으로 보면, 1~3위를 백자 달항아리가 차지하고 있는 게 단연 눈에 띕니다. 3위에 올라 있는 달항아리는 일본인 소장자가 내놓..

도자기 이야기 2019.07.08

백자청화 산수시문 연적 白磁靑華山水詩文硯滴

백자청화 산수시문 연적 白磁靑華山水詩文硯滴 8.8x9.4x6.7(h) cm : 2012년9월26일 서울옥션 제125회미술품경매 No.427 3300만원 낙찰 조선후기 들어 과거지망생 수가 급증하면서 덩달아 개화한 것이 시(詩)의 시대였다. 과거 과목 중 하나에 시가 들었기도 했거니와 운치 있는 시를 지을 줄 모르면 제대로 된 문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시를 짓는 일은 문인 사회를 넘어 중인들까지 번졌고 또 기방에서도 한글을 섞어 한시를 읊는 가요가 크게 유행했다. 그런 시절을 배경으로 도자기에도 자주 시문이 적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강가의 정자와 조각배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이다. 그 빈 여백에 시귀 하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네 면을 돌아가면서 시구를 적었다. 그..

도자기 이야기 2019.07.08

백자청화 산수문 사각연적 白磁靑華山水文四角硯滴

백자청화 산수문 사각연적 白磁靑華山水文四角硯滴 9x11.5x9.5(h) cm -2004년12월17일 서울옥션 제92회 미술품경매 No.103 6000만원 낙찰 조선시대 백자에 청화 문양이 급증하는 것은 몇 차례 소개한 대로 18세기 들어서부터이다. 그런데 18세기의 청화백자의 문양과 19세기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데가 있다. 물론 시대는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누지 못해 18세기의 문양이 그대로 19세기에 전해진 것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두 시기의 특징은 분명하다. 18세기를 도자기가 회화와 만난 시대, 즉 문양 속에 회회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시대라고 하면 19세기는 세속적 행복을 바라는 길상(吉祥) 문양이 도자기를 뒤덮었다고도 할 만한 양상이 드러난 시대이다. 이렇게 시대가 나뉘지만 18세기에..

도자기 이야기 201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