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이야기 267

분청사기 철화삼문 장군 粉靑沙器 鐵畵蔘文 獐本

분청사기 철화삼문 장군 粉靑沙器 鐵畵蔘文 獐本 16세기전반 길이26cm : 2007년7월12일 서울옥션 제107회미술품경매 추정가 4500만-5000만원 『베스트셀러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1889년 미국에서 처음 쓰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베스트셀러라는 말은 없어도 그런 현상은 16세기부터 있었다고 말합니다. 도자기에도 베스트셀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룡산에서 만든 도자기 가운데 인삼잎처럼 생긴 문양의 분청사기는 가히 당대의 베스트셀러라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이선생의 말에 따르면 만들기는 계룡산 가마뿐 이지만 거의 전국적으로 이 삼엽문(蔘葉文) 분청사기가 출토된다는 것입니다. 교통과 운송에 제한이 많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베스트셀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도자기 이야기 2019.08.24

분청사기 철화당초문 호 粉靑沙器 鐵畵唐草文 壺

분청사기 철화당초문 호 粉靑沙器 鐵畵唐草文 壺 16세기전반 높이16.8cm : 2014년6월17일 서울옥션 제132회미술품경매 낙찰가 1750만원 푸른빛이 아닌 희뿌연 회색 나는 청자에 백토 물을 화장하듯 발라 구운 것이 분청사기입니다. 이것이 언제부터 제작됐는지는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종(재위 1418-1450)과 세조(재위 1455-1468) 시대를 거치면서 세련된 것들이 많이 만들어져 이 시기에 기법적으로 거의 완성됐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다가 1468년 경기도광주에 분원이 설치되면서 조락의 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궁중과 관청에 소용되는 백자를 집중적으로 대량 제작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취향이 달라졌습니다. 너도나도 뽀얗고 깨끗한 백..

도자기 이야기 2019.08.24

백자 유개호 白磁 有蓋壺

백자 유개호 白磁 有蓋壺 16세기 높이26cm : 2015년 5월31일 서울옥션 제15회 홍콩경매 낙찰가 260만 홍콩달러(약3억8천만원) 순백의 몸체에 살짝 물레 흔적이 보이는 백자 항아리입니다. 하부에서 어깨로 올라가는 선은 듬직하면서도 당당한 느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위에 큰 뚜껑이 덮였습니다. 도자기도 주로 음식을 담아 쓰는 용도인 이상 마개나 뚜껑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짝을 갖춰 전해지는 것은 극히 드문 실정입니다. 우선 그 점이 눈길을 끌며 그 위에 잘 빗은 연봉 모양의 꼭지가 달렸습니다. 연봉의 품위도 그렇지만 밋밋한 가운데 살짝 격차가 있는 단을 두어 표나게 보이지 않은 속에서도 격을 높였습니다. 도자기 감상의 3대 포인트는 흔히 형태, 색, 문양이라고 합니다. ..

도자기 이야기 2019.08.23

백자호 白磁壺

백자호 白磁壺 높이 37cm : 2006년4월26 서울옥션 제101회 미술품경매(No.120) 추정가 1억8천만-2억5천만원 부드러운 백색이 눈길을 사로잡는 항아리입니다. 조선시대 흰 백자라고 해도 실은 좀 더 엄격하게 보면 색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어딘가 눈처럼 희게 보이는 백색이 있는가 하면 조금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듯이 보이는 백색도 있습니다. 그 외에 회백색, 청백색을 꼽기도 합니다. 특히 눈처럼 보이는 것이나 젖의 색처럼 약간 노르스름하게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설(雪)백색 그리고 유(乳)백색이라고 합니다. 설백색이나 유백색이란 모두 백토에 섞인 철분 등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색입니다. 그 위에 유약의 투명도와도 관련됩니다. 그래서 색에 따라 산지를 구별하거나 시대를 나누기도 합니다. ..

도자기 이야기 2019.08.23

[최건의 한국 청자의 흐름] 1. 화려하고 아름다운 청자의 세계

[최건의 한국 청자의 흐름] 1. 화려하고 아름다운 청자의 세계 한국 청자의 역사에서 전남 강진요(康津窯)를 빼놓고 말하는 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통일신라시대 후기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600여 년에 이르는 청자의 긴 역사에서 초기 단계인 발생과 발전 시기의 약 150년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기간에서 강진요가 한국 청자의 적자(嫡子)로서 절대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 중반 즈음에 중국 월주요(越州窯)를 모델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청자는 11세기의 세련기를 거치면서 한국적 요소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2세기 전반에는 종주국인 중국을 제치고 ‘고려비색 천하제일(高麗翡色 天下第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중국 안의)다른 곳에서도 만들고자 했으나 종래..

도자기 이야기 2019.08.21

최건의 한국 청자의 흐름 - 제1기. 초기청자의 시대(9세기후반~11세기초)

초기청자의 시대(9세기후반~11세기초) 1) 중국 월주요 청자의 수용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청자를 제작한 때를 말해주는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 이남의 여러 지역에서 당시의 중국 청자를 대표하는 월주요(越州窯) 기술이 전해져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던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정설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고도의 수준 높은 기술은 종래와 같은 소극적 교류만으로 불가능하다.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서 청자를 자체 생산하려는 요구가 컸기 때문에 월주요의 전문인력이 건너오고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강남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월주요식 청자를 한반도에서 다시 만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월주요의 새로운 기술은 ..

도자기 이야기 2019.08.20

백자 대호 白磁 大壺

백자 대호 白磁 大壺 18세기전반 높이38cm : 2006년 2월23일 서울옥션 제100회미술품경매, 6억원 낙찰 조선시대 도자기에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간혹 있습니다. 전기에는 대부분이 분청사기에 보이며 후기가 되면 19세기 이후 분원산 청화백자에 주로 보입니다. 물론 시대가 더 내려와황해도 봉산 일대에서 만든 이른바 해주가마 도자기에도 글귀가 보입니다. 그런데 조선 전기와 후기에 보이는 글자는 그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분청사기의 글귀는 대부분이 관서명(官署名)입니다. 장흥고(長興庫, 궁중물품 관리조달 부서)를 비롯해 인수부(仁壽府, 세자를 위한 부서), 인녕부(仁寧府, 왕비를 위한 부서), 내자시(內資寺, 왕실 물자관리 부서, ), 내섬시(內贍寺, 관청 및 신하에 소용되는 물품관리 부서) 등의 이..

도자기 이야기 2019.08.19

백자대호 白磁 大壺

백자대호 白磁 大壺 18세기 높이41cm : 2003년 4월10일 서울옥션 제70회미술품경매, 3억6천만원 낙찰 잘 생긴 백자 달 항아리입니다. 크기도 늠름할 뿐 아니라 색도 곱습니다. 금사리 달 항아리의 전형이라 할 만합니다. 달 항아리의 경우는 45cm을 넘어야 물건, 즉 대작(大作)으로 쳐줍니다. 시장에서 그렇다는 말인데 이 항아리는 그 기준에 비춘다면 조금 못 미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 점만 빼고 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금사리 전성기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금사리(金沙里)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걸쳐 분원 가마가 있던 곳으로 퇴촌면에서 경안천으로 끼고 분원리로 가는 길 우측 골짜기 일대를 말합니다. 현장을 조사했던 정양모 전 관장에 의하면 가마터는 마을 주변의 구릉에 ..

도자기 이야기 2019.08.18

백자호 白磁壺

백자호 白磁壺 18세기 높이37cm : 2007년9월15일 서울옥션 제108회 미술품경매, 추정가 5억-7억원 대작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당당하게 큰 백자 달 항아리입니다. 흔히 순백의 달 항아리라고 표현하지만 남아있는 달 항아리가 순전한 순백의 경우는 없습니다. 만들어져 사용된 지 2백년 가까운 물건이 가마 속에서 나온 그대로인 채로 뽀얗게 남을 수는 없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남고 때가 묻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흰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이 세월의 흔적을 빼는데 한동안 고심했습니다. 세제를 푼 물에 넣고 북북 씻은 것은 물론 과산화수소 같은 것을 섞은 물에 담궈 뽀얀 색으로 보이도록 했습니다. 이런 약품 물에 넣는 것은 유약을 한 거풀 벗겨내는 것과 같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거죽을 벗기는 것..

도자기 이야기 2019.08.17

백자호 白磁壺

백자호 白磁壺 높이16.1cm : 2013년9월10일 서울옥션 제129회 미술품경매, 9,900만원 낙찰 달 항아리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 법한 항아리입니다. 몸체의 색은 밝고 환해 더없이 보이는데 형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중심이 아래로 쳐져 있는 느낌입니다. 사람 얼굴에 비유한다면 아랫볼이 불룩한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백토의 색은 탄복할 만큼 참 좋아 보는 사람의 마음조차 맑아지는 듯합니다. 이 항아리에 쓰인 백토는 금사리에 비해 훨씬 고은 쪽입니다. 이 선생의 말에 따르면 이 항아리는 조선 전기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뒤인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에 경기도 광주의 번천리(樊川里) 가마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도자기는 서화와 달리 안이고 밖이고 ..

도자기 이야기 2019.08.17